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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52937 님의 블로그
오스만 제국의 황금기의 시작16세기 중반, 오스만 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 중 하나로 성장했다. 지중해, 발칸, 아라비아, 북아프리카를 아우르며 동서양을 연결하는 거대한 이슬람 제국으로 자리잡은 이 시기, 제국을 이끈 황제는 바로 수레이만 대제(Süleyman the Magnificent, 재위 1520~1566)였다. 수레이만은 법률 제정, 군사 정복, 건축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기며 ‘위대한 정복자’이자 ‘법률가 술탄’으로 불렸다.하지만 제국의 이 화려한 외면 뒤에는 제도를 정비하고, 정보와 사람을 관리하며, 수레이만의 결정을 구조화한 실무형 설계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바로 파르갈르 이브라힘 파샤(Pargalı İbrahim Paşa) 였..
왕조와 교회의 갈등이 만들어낸 역사, 그 뒤편의 설계자16세기 초 유럽은 겉으로는 번영과 예술의 시대, 곧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었지만, 그 속에는 거대한 종교적 충돌과 권력 구조의 재편이 일어나고 있었다. 유럽 전역의 종교개혁 물결이 일어나 루터, 칼뱅 등 개신교 사상이 확산되던 시기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여전히 강력한 권위를 유지하고 있었고, 각국의 군주들은 교황의 승인 없이는 결혼, 이혼, 후계자 문제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없었다. 이때 영국의 국왕 헨리 8세는 자신의 왕비인 캐서린과 이혼하고 안 보린과 재혼해 후계자를 얻고자 했지만, 교황은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이 위기를 해결한 인물이 바로 토머스 크롬웰(Thomas Cromwell, 1485년경~1540)이었다. 그는 출신으로 보면 권력과는..
무굴 제국이 꽃피던 역사, 조용한 설계자가 필요했던 시대16세기 중반 인도는 새로운 제국 질서가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였다. 티무르와 칭기즈칸의 후손을 자처한 바부르로부터 시작된 무굴 제국(Mughal Empire)은 아크바르 대제(재위 1556~1605)의 통치 아래 강력한 제국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단지 영토를 넓히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제국이 될 수 없었다. 무굴 제국이 다스리는 땅에는 힌두교도, 무슬림, 시크교도, 자이나교도 등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혼재하고 있었고, 이를 하나로 묶는 새로운 정치·문화 설계가 필요했다.이 시기에 주목할 만한 인물이 바로 비르발(Birbal, 1528~1586)이다. 본래 힌두 브라만 출신의 시인이자 학자였던 그는, 무굴 제국의 이슬람 군주 아크바르 곁에서 종교 융합과..
전국시대의 마지막, 에도 시대의 역사가 시작되다16세기 후반, 일본은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 이후 다시 격동에 휩싸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평정한 듯했지만, 그의 사후 다시 권력의 공백이 생기면서 일본은 최후의 통일 전쟁으로 향하게 된다. 이 시기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뛰어난 인내와 정치 감각으로 전국을 하나로 묶을 기회를 잡는다. 그러나 이에야스가 단독으로 통일을 완성한 것은 아니었다.그의 곁에는 뛰어난 군사 전략가이자 행정 실무형 설계자, 이이 나오마사(井伊直政, 1561~1602)가 있었다. 나오마사는 단순한 무장이 아니었다. 그는 도쿠가와 세력을 위해 군 조직을 체계화하고, 적과 아군을 명확히 구분한 색채 전술을 도입했으며, 전투 이후에는 지방 통치를 안정시키는 실무 설계까지 맡았다. 그런..
종교 전쟁의 시대, 실용 정치의 설계사를 찾다16세기 유럽은 겉으로는 종교 개혁과 르네상스가 일어나고 있었지만, 그 이면에서는 왕위 계승 문제와 종교 갈등, 외교 충돌이 끊이지 않던 시대였다. 영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헨리 8세가 로마 가톨릭을 떠나면서 만든 영국 국교회는 한 왕의 결단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체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나아가 영국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는 여전히 혼란 속에 있었다.그 혼란을 정리하고, 엘리자베스 1세 치세를 통해 영국이라는 국가를 하나의 체계로 정비한 실무 설계자가 있었다. 바로 윌리엄 세실(William Cecil, 1520~1598)이다. 그는 국왕도 아니었고, 종교개혁의 선동가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외교, 행정, 정보, 종교, 교육을 모두 다룰 수 있는 ..
사하라 너머의 제국, 새로운 역사 질서를 설계한 땅15세기 서아프리카, 유럽은 르네상스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사하라 사막 남쪽에는 이미 고도로 조직된 거대한 황금 제국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제국이 바로 말리 제국(Mali Empire)이다. 이 제국은 서아프리카에 있었고, 오늘날 말리 공화국을 중심으로 세네갈, 기니, 모리타니,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일부 지역까지 포함된다. 당시 티브크투(Timbuktu), 가오(Gao), 제네(Jenne) 같은 도시를 중심으로 사하라 무역, 이슬람 율법, 농업과 광업이 융합된 고유한 문명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말리 제국의 부와 질서, 학문적 수준은 14세기 이븐 바투타(Ibn Battuta)에 의해 상세히 기록되었고, 이후 15세기에는 수니 알리(Sonni Ali)라..
인쇄술이 역사를 바꾼 순간, 그 뒤에 있었던 설계자15세기 유럽은 기술과 지식이 서서히 봉건 질서를 넘어 움직이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이라는 격변의 전조가 곳곳에서 꿈틀댔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지적 갈증은 더 이상 필사본과 성직자의 입을 통해 충족될 수 없었다. 그 순간, 활자 인쇄술(printing press)이라는 혁신이 등장한다. 이 기술은 수백 년 동안 지식의 독점 구조를 지탱했던 중세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근대 유럽을 여는 문을 열게 된다.이 인쇄술을 발명한 인물로 가장 잘 알려진 이는 당연히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다. 그는 최초로 금속 활자를 이용한 인쇄 시스템을 개발했고, 1455년 초중반에 성서 42행 인쇄를 통해 서양 최초 의 대량 인쇄..
비잔틴 제국의 마지막 역사15세기 중반,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는 아직 중세와 근대를 나누는 문이 열리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동로마 제국, 즉 비잔틴 제국은 과거 로마의 영광을 마지막으로 지키고 있었지만, 실상은 수도 콘스탄티노플만 간신히 지키는 소국에 가까운 상태였다. 반면, 아나톨리아와 발칸 반도 일대를 빠르게 확장하고 있던 세력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이며, 이 제국을 제국으로 만든 결정적 전환점에는 단 한 명의 강력한 설계자가 있었다.그는 단순히 영토를 정복한 무장이 아니었고, 도시의 기반부터 국가 구조, 법과 종교 정책까지 하나하나 정비한 정복과 통치의 설계자, 무함마드 2세(Muhammad II), 일명 알-파티흐(al-Fatih)였다. ‘알-파티흐’란..
대항해 시대의 문을 연 역사, 그 이면의 설계자15세기 후반, 유럽은 이제까지의 세계가 전부가 아니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중세가 막을 내리고, 르네상스가 피어나는 이 시기 유럽인들은 아시아와 인도를 향한 새로운 무역로를 찾기 위해 나서기 시작했다. ‘신항로 개척’, 즉 미지의 바다를 통해 새로운 대륙과 교역지를 찾으려는 꿈은 당시 스페인, 포르투갈 등 해양 국가들을 중심으로 번져갔다. 이 대항해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이는 단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다.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항해’에는 결코 혼자서는 도달할 수 없었던 현장의 설계자들이 존재했다. 그 중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면서도, 역사 속에서 이름이 거의 사라진 인물이 있다. 바로 마르틴 알론소 핀손(Ma..
중세 말, 르네상스의 흐름을 설계하다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 유럽은 흑사병과 전쟁으로 혼란을 겪고 있었지만, 이탈리아 북부 도시국가들 사이에서는 전혀 다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었다. 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 제노바와 같은 도시들은 각각 고유의 문화를 꽃피우고 있었고, 특히 피렌체는 르네상스(문예부흥)의 중심지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예술과 철학의 도시였지만, 실제로 피렌체는 끊임없는 정치 암투와 권력 다툼이 벌어지는 상업과 은행, 귀족 정치가 얽힌 도시국가였다.이 시기에 등장한 인물 중, 공식적인 왕이나 황제가 아님에도 도시의 정치 구조와 문화 방향을 사실상 설계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 1389~1464)였다. 그는 ‘메디치 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