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은 설계자

[역사의 숨은 설계자]70. 맥스웰 퍼킨스(Maxwell Perkins)-미국 문학사에 거장을 탄생시킨 문학 설계자

diary52937 2025. 7. 22. 11:25

산업화 시대 미국 문학의 성장과 출판 편집자의 부상

20세기 초반 미국은 산업화와 도시화, 세계대전과 대공황, 그리고 사회적 혼란과 문화적 전환이 교차하는 거대한 격변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미국 문학도 이러한 시대적 변화와 함께, 1910년대부터 모더니즘 문학이 본격적으로 부상하였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작가들은 전통적 가치에 대한 회의, 개인의 내면 탐구, 문체의 실험과 압축에 매력을 느끼며, 당시까지의 문학적 규범을 뛰어넘는 새로운 표현을 시도했다.

이 새로운 흐름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출판 시스템 또한 변화가 필요했다. 단순히 원고를 교정하던 편집자의 역할은 점차 확대되었고, 이제는 작가의 가능성을 발굴하고 성장시키며, 작품이 시장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갖출 수 있도록 조율하는 창의적 동반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 등장한 인물이 바로 맥스웰 에버츠 퍼킨스(Maxwell Evarts Perkins)였다. 그는 출판 편집자의 역할을 단순한 기술자를 넘어 ‘문학적 동반자’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선구자였으며, 현대 미국 문학이 세계적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조력자였다.

하버드 출신의 기자가 문학의 설계자로 

맥스웰 퍼킨스는 1884년 9월 20일 미국 뉴욕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책과 문학에 흥미를 보였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토머스 하디와 헨리 제임스 같은 작가들을 깊이 있게 탐독했다. 졸업 후 한동안 기자로 일했지만, 1910년 출판사 찰스 스크리브너스 선즈(Charles Scribner’s Sons)에 입사하여, 36년간 이 출판사에서 근무하며 수많은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키워냈다. 

처음에는 광고부서에서 시작한 그는 빠르게 편집부로 옮겨갔고, 작가의 원고에 손을 대는 것 이상으로, 작가의 방향성에 깊이 개입하고 문장과 구조를 함께 설계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편집의 지평을 열기 시작했다. 퍼킨스는 당시까지도 '편집자는 기계적으로 문법을 바로잡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깨고, 작가의 정신세계를 함께 탐험하는 동반자가 되고자 했다.

그는 당시 신인이었던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첫 장편 소설 《낙원의 이편(This Side of Paradise)》을 출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이후 피츠제럴드의 모든 작품을 함께 다듬고 설계하였다. 또한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통해 미국 문학계에 충격을 줄 수 있도록 문체를 절제하고 주제를 선명하게 다듬는 작업에 깊이 개입했다.

퍼킨스는 나중에 토머스 울프라는 거대한 재능을 발견했으며, 그가 방대한 원고를 구성력 있는 소설로 완성할 수 있도록 직접 개입했다. 특히 울프의 대표작 《천사여, 고향을 보라(Look Homeward, Angel)》는 퍼킨스의 구조 재편과 압축 없이는 출간될 수 없었을 만큼, 그는 창작의 공동 제작자에 가까웠다.

그는 1947년 6월 17일, 뇌렴증으로 사망하였으며, 생전에 직접 저술한 책은 거의 없지만, 작가들의 헌사와 회고록 속에서 '가장 위대한 비명성의 편집자'로 존경받는 인물로 남았다.

20세기 미국 문학역사에 시장을 설계하고 거장을 탄생시킨 설계자 맥스웰 퍼킨스

미국 문화를 성장시킨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은 당대 최고 작가들의 문학적 성장을 가능하게 한 편집 철학과 실천 방식이다. 그는 단순히 원고의 맞춤법을 고치는 수준을 넘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구조화하고 명료하게 전달하도록 이끌었다.

그는 1920년대 후반부터 30년대까지 F. 스콧 피츠제럴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토머스 울프라는 '미국 현대문학의 삼각축'을 출판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켰으며, 이들의 작품이 단기적인 대중성뿐 아니라 문학사적 가치까지 가질 수 있도록 철저한 편집과 방향 제시를 했다.

퍼킨스의 편집 방식은 '작가의 영혼을 이해하고,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용기 있게 꺼내도록 돕는 것'이었다. 그는 작가가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잠재력을 드러내게 하고, 너무 지나친 자아표현이나 산만한 전개를 절제하도록 유도했다. 이 과정을 통해 작품은 더 큰 보편성과 예술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그는 작가들과의 교류에서도 독특한 방식으로 기억된다. 그는 피츠제럴드의 술주정과 방황, 헤밍웨이의 냉소와 경쟁심, 울프의 과잉 감정과 불안정함을 모두 감싸며 '인간적인 관계 속에서 문학이 탄생한다'는 믿음을 끝까지 유지했다. 일부 평론가들은 퍼킨스가 ‘미국 문학의 프로듀서’로서 창작 이상의 구조를 설계한 인물로 평가하기도 한다.

문학의 시장 설계자

퍼킨스가 활동한 시기는 편집자가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문학의 공동 창작자이자 시장 설계자로 자리매김하던 시기였다. 그가 창출한 모델은 오늘날까지도 미국 출판계와 문학계에서 표준이 되고 있다. 특히 작가와 편집자 간의 긴밀한 관계, 문학성과 시장성의 균형, 원고의 의미 분석과 서사 구조 재편 등은 현대 편집 철학의 기초가 되었다.

그는 당대 작가들이 자신의 문체를 확립하고, 문학적 정체성을 세우는 데 결정적인 길잡이 역할을 했다. 피츠제럴드가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 시대의 공허함을 표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퍼킨스의 냉정한 구조 조언과 표현 조율이 있었으며, 헤밍웨이가 감정 절제와 간결성으로 독자와 만날 수 있었던 데에는 퍼킨스의 ‘언어 다이어트 철학’이 숨겨져 있었다.

더불어 그는 출판사의 존재 방식도 변화시켰다. 과거에는 작가의 유명세에 의존하거나, 대중 시장에 맞춘 빠른 콘텐츠 생산이 주요 전략이었지만, 퍼킨스는 작가 한 사람의 문학적 생애 전체를 함께 설계하는 장기적 관점의 편집 모델을 실현했다. 이는 이후 편집자라는 직업이 하나의 전문성과 창조적 사고를 요구하는 고급 지식노동으로 자리잡게 한 기점이 되었다.

미국 문학 역사를 바꾼 문학 설계자

오늘날 맥스웰 퍼킨스는 미국 문학사를 바꾼 가장 위대한 편집자로 칭송받는다. 작가의 문장을 고치기보다 작가의 영혼과 싸우며, 그들이 더 나은 자신이 되도록 이끈 존재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는 직접 글을 쓰지 않았지만, 수많은 명작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결정적 역할을 한 문학 설계자였다.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일부 학자들은 퍼킨스가 편집자의 권한을 과도하게 행사했으며, 특히 토머스 울프의 작품에서 보여준 대대적인 축약과 구조 변경은 '공동 저작의 경계'를 넘는 행위였다고 본다. 울프 자신도 결국 퍼킨스와 갈등하며 출판사를 옮겼고, 이로 인해 둘의 관계는 단절되었다.

또한 헤밍웨이와의 관계에서는 작가의 주도권을 놓고 팽팽한 긴장이 존재했다. 퍼킨스가 문장을 줄이고, 감정을 억제시키는 편집 철학을 강요하면서 작가의 창의성에 제한을 가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킨스는 문학을 사업으로 바라보면서도 예술의 가치를 지켜낸 유일한 편집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책이 팔려야 한다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작가와 함께 예술적 이상을 향해 나아간 드문 편집자였다. 오늘날 출판계에서 '퍼킨스처럼 편집하라'는 말은 단지 교정하라는 뜻이 아니라, 작가의 심연을 함께 걸어가라는 요청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