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은 설계자

[역사의 숨은 설계자]46. 존 스노우(John Snow)-공중 보건과 현대 마취학의 창시자

diary52937 2025. 7. 12. 23:20

산업혁명과 감염병이 공존한 런던의 거리

19세기 중반의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도시 중 하나였다. 산업혁명의 여파로 시골에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런던은 인구 과밀, 열악한 주거 환경, 정화되지 않은 상수도 문제로 가득했다. 하수와 식수가 분리되지 않은 곳이 많았고, 오물과 쓰레기가 거리 곳곳에 넘쳐났으며, 수인성 질병의 확산은 시간 문제였다. 특히 콜레라(Cholera)는 당시 영국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은 대표적 감염병이었다.

1831년부터 수차례에 걸쳐 콜레라가 런던을 덮쳤으며, 사람들은 그 원인을 명확히 알지 못한 채 ‘나쁜 공기(악취)’가 병을 일으킨다는 ‘미아즈마 이론(Miasma Theory)’을 믿었다. 이러한 이론은 정치와 언론, 심지어 의학계에도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 누구도 오염된 물이 병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물은 맑아 보이기만 하면 안전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이 상황에서 한 젊은 의사가 기존의 통념에 의문을 품고, 논리와 과학적 관찰을 통해 감염의 진실을 밝히는 데 도전하게 된다. 그는 바로 존 스노우(John Snow)였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관찰력의 천재

존 스노우는 1813년 3월 15일, 영국 북부 요크(York)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복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관찰력이 뛰어났고 숫자와 논리에 관심이 많았다. 14세가 되던 해, 그는 외과 의사 견습생으로 일하며 의학의 기초를 익히기 시작했다. 이후 런던 대학에서 의학사 및 의학 박사 학위 취득하여, 1838년에는 왕립 외과의학회 회원이 되며 공식적인 의사 자격을 얻게 된다.

존 스노우는 마취 분야에서도 선구적인 실험을 진행했으며, 에테르와 클로로포름을 활용한 최초의 안전한 마취 기술을 개발한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가 진정한 업적을 이룬 분야는 감염병, 특히 콜레라에 대한 연구였다. 그는 런던을 휩쓸던 콜레라의 원인을 찾기 위해 직접 거리를 걷고, 감염자 가족을 인터뷰하고, 지도를 그려가며 사례를 정리했다. 당시에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학적 방식이 정착되지 않은 시기였지만, 그는 오로지 관찰과 기록을 통해 과학적 진실에 접근해 나갔다. 

존 스노우는 1858년 6월 16일, 뇌졸중으로 인해 45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당시에는 그의 이론이 널리 인정받지 못했다. 콜레라균의 존재는 그가 사망한 후 25년이 지나서야 확인된다. 

공중 보건학의 방향을 제시하다

존 스노우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1854년 런던 소호 지역에서 벌어진 ‘브로드 스트리트 펌프 사건(Broad Street Pump Incident)’으로 요약된다. 이 사건은 현대 역학(epidemiology)의 출발점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소호에서는 갑작스럽게 콜레라가 폭발적으로 퍼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목숨을 잃었다. 스노우는 이 지역에서 발생한 사망 사례를 하나하나 지도에 표시하기 시작했고, 곧 대부분의 감염자가 브로드 스트리트에 위치한 특정 수돗물 펌프를 사용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 펌프가 감염의 진원지라고 판단하고, 지역 행정 당국에 해당 펌프의 손잡이를 제거해 사용할 수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손잡이가 제거된 후, 콜레라 확산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사람들은 처음에는 우연이라 여겼지만 이후 그의 주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오염된 물이 질병을 일으킨다’는 개념을 과학적으로 제시한 최초의 사례로, 공중보건학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그는 또 다른 연구에서, 같은 지역 내에서도 서로 다른 수원(水源)을 사용하는 집들 사이에 콜레라 발생률 차이가 있음을 밝혀냈고, 이는 오염된 물이 감염의 원인이라는 것을 더욱 명확하게 입증했다. 이러한 관찰은 단순한 직관이 아니라, 데이터를 바탕으로 원인을 추론한 과학적 역학적 방법론의 시초였다.

공중 보건의 역사를 열고, 현대 마취학의 창시자 존 스노우

고통없는 의술을 설계한 선구자

19세기 중반까지 외과 수술은 마취제 없이 진행되었으며, 환자들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수술을 견뎌야 했다. 이로 인해 많은 환자들이 수술을 받기 전에 공포로 정신을 잃거나, 수술 중 과다한 스트레스로 사망하기도 했다. 의사들은 가능한 한 빠르게 수술을 끝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는 정확성과 안전성을 희생한 의료 행위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에테르(Ether)와 클로로포름(Chloroform)이라는 마취제였다. 그러나 이 물질들은 당대 의료인들 사이에서 용량 조절의 기준이 없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널리 쓰이지 않았다. 존 스노우는 이 두 물질을 체계적으로 실험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인물 중 하나였다. 그는 환자의 체중, 호흡 빈도, 맥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마취의 농도와 지속 시간을 계산했고, 마취의 안전한 투여법과 적절한 장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1847년, 그는 『On the Inhalation of the Vapour of Ether in Surgical Operations』라는 논문을 통해 마취제의 효과와 부작용, 정확한 투여법에 대해 발표했고, 이는 당시 수술실 환경을 혁신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 그는 클로로포름 연구로 영역을 확장하여 보다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마취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연구는 이론에 머무르지 않았다. 1853년, 그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아홉 번째 자녀를 출산할 때 직접 클로로포름을 투여하여 성공적인 무통 분만을 이끌었으며, 이를 계기로 마취제 사용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급격히 변화하게 된다.

그는 감각적 경험이 아니라 정량적 분석과 논리적 설계를 통해 마취를 규정하였고, 이는 오늘날 마취학의 표준 수립에 결정적인 기초가 되었다. 그의 실험과 기록은 현재도 의과대학 교과서에서 참고되고 있으며, 그는 마취라는 과학 기술을 환자의 생명과 존엄을 위한 도구로 만든 현대 마취학의 창시자로 기억되고 있다.

공중 보건과 개인 생명을 보호한 숨은 설계자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감염병 대응의 핵심은 ‘역학(Epidemiology)’이다. 이는 단순히 병의 치료가 아니라, 병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추적하고, 퍼지는 경로를 분석하여, 미리 막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 역학의 기초를 세운 인물이 바로 존 스노우이다. 그의 관찰 방식, 지도 작성, 사례 추적은 오늘날 질병관리청(CDC), 세계보건기구(WHO) 등의 업무 방식과 거의 흡사하며, 현대 보건 행정의 프로토타입이라 할 수 있다.

특히 2020년대 코로나19와 같은 전 세계적 팬데믹 상황에서, 많은 전문가들은 다시 존 스노우를 언급했다. 감염 경로를 추적하고, 방역 정책을 수립하며, 데이터를 분석하는 과정은 그가 만든 방식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첨단 과학도 그의 관찰에서 시작된 기본 원칙을 여전히 따르고 있다.

존 스노우는 거리에서 콜레라의 원인을 추적한 실천적 관찰자였을 뿐 아니라, 수술대 위에서 고통을 덜어준 기술자이기도 했다. 그는 한편으로는 사회 구조에 개입한 보건 설계자,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 생명을 보호한 임상 설계자였다. 그의 유산은 오늘날 감염병 대응 매뉴얼, 마취 투여 지침, 보건 도시계획, 환자 중심 의료 시스템 등 다양한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과학은 현장을 관찰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며, 사람의 고통을 줄이는 데 쓰일 때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 

런던에는 현재 브로드 스트리트 펌프 사건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존 스노우 펍’이라는 이름의 술집도 그의 명예를 기리고 있다. 그는 생전에 많은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사후에는 ‘공중보건의 아버지’이자 ‘현대 역학의 창시자’로 널리 존경받고 있다. 과학은 실험실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리에서, 사람 속에서, 현장을 뛰어다니며 문제를 해결한 존 스노우는 진정한 실천적 과학자였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위생과 보건 정책의 중심에 서 있는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