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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52937 님의 블로그
음악과 기술이 융합된 유럽의 황금기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 유럽은 예술과 과학, 기술이 동시에 발전하던 시기였다. 프랑스에서는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을 중심으로 절대왕정을 완성했고, 영국은 산업혁명의 초기 조짐을 보이며 과학적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편 이탈리아는 여전히 유럽 음악과 장인의 중심지로서 명성을 떨쳤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거치며 회화, 건축, 음악, 공예의 기술이 최고조에 이르렀고, 음악은 왕실과 귀족, 도시 시민계층 모두의 중요한 문화 요소가 되었다.이 시기의 유럽 음악은 오페라, 관현악, 실내악 등 장르가 다양해졌고, 이에 따라 악기 제작 기술 또한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이탈리아 북부의 크레모나(Cremona) 지역은 뛰어난 현악기 장인들이 모여 있는 ..
제국, 과학, 식민주의가 뒤섞인 배제의 시대17세기 유럽은 정치적 확장과 과학적 발견이 동시에 일어나던 시대였다.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에 이르는 해외 식민지를 차지하려 했고, 이를 통해 막대한 자원과 권력을 확보하려고 경쟁하였다. 이 시기 네덜란드는 해상 무역과 식민지 정책을 통해 세계적인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었으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VOC)는 아시아 및 남미 식민지를 통치하며 세계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였다.한편 유럽 내부에서는 ‘과학혁명’이라 불리는 지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이 등으로 이어진 천문학과 수학의 발전은 자연에 대한 인식 방식을 바꾸었고, 실험과 관찰을 중시하는 경험주의 과학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생물학, ..
30년 전쟁 이후 무너진 경제를 다시 세우다.17세기 유럽, 특히 독일 지역은 30년 전쟁(1618~1648) 이후 극심한 혼란과 경제적 파괴 속에 놓여 있었다. 이 전쟁은 단순한 종교 전쟁을 넘어 정치적, 경제적 분열까지 일으켰고, 수많은 도시와 농촌이 파괴되었으며 인구의 30% 이상이 감소할 정도로 참혹한 피해를 남겼다. 전쟁이 끝났지만, 사회 구조는 무너져 있었고 상업과 산업은 거의 마비된 상태였다. 신성로마제국 내부의 각 지역은 재건을 위해 새로운 경제 정책과 기술 혁신이 절실히 필요했다.이 시기 유럽 각국은 절대왕정을 강화하며 중앙집권 체제를 수립하려 했고, 그 기반이 되는 것은 바로 ‘국가 경제’였다. 특히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지역을 중심으로 무너진 상업과 수공업을 ..
통합과 갈등이 교차하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는 영국 역사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전환기 중 하나였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오랜 전통을 지닌 각기 다른 왕국이었지만, 1603년 제임스 6세가 두 나라의 왕위를 동시에 계승하면서 ‘동군연합’이 시작되었다. 이후 약 100년간 두 나라는 하나의 왕을 모시면서도 서로 다른 의회와 법률 체계를 유지하는 독특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이 구조는 내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고, 특히 스코틀랜드 내부에서는 독립성과 자치를 유지하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었다.이 시기의 영국은 종교 갈등, 왕권과 의회의 충돌, 상업 경쟁 등으로 인해 불안정한 정치 지형 속에 있었다. 1688년 명예혁명으로 제임스 2세가 퇴위하고 윌리엄과 메리가 ..
전쟁과 혼란의 유럽17세기 유럽은 종교, 정치, 경제가 얽힌 혼란의 시기였다. 특히 독일 지역은 1618년에 시작된 30년 전쟁으로 인해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이 전쟁은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의 종교 갈등으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각국의 정치적 이해관계까지 얽히게 되었다. 독일 전역은 전쟁터가 되었고, 도시와 마을은 파괴되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기근과 질병에 시달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 내 각 도시들은 생존을 위해 방어 체계와 행정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할 필요가 있었다.그 결과, 단순한 군사력이 아닌 기술과 설계, 그리고 도시 관리 능력이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게 되었다. 성벽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도시의 운명이 갈렸고, 자원 분배와 시장 운영 같은 도시 내부의 행정 구조도 전쟁에 맞게..
절대왕정 속 프랑스의 격동기17세기 유럽은 거대한 정치적 변화와 경제적 불안 속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특히 프랑스는 전성기와 위기가 동시에 존재하던 국가였다. 루이 13세와 그의 후계자인 루이 14세가 통치하던 시기, 프랑스는 중앙집권을 강화하며 ‘절대왕정’ 체제를 완성해 나가고 있었다. 이 체제는 국왕이 법과 의회보다도 위에 있는 권력을 지니는 것으로, 당시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와 유사한 방향으로 정치 구조를 바꾸고 있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대표적인 절대왕으로, 모든 권력을 자신의 손아귀에 집중시켜 ‘국가란 곧 나’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그러나 겉으로는 찬란해 보이던 루이 14세의 시대에도 큰 문제가 있었다. 오랜 전쟁으로 인해 국가 재정은 극도로 악화되어 있었고, 특히 30년 전쟁 이후..
전환기 스웨덴에서 태어난 귀족 설계자15세기 말과 16세기 초, 스웨덴은 덴마크 중심의 칼마르 연합에서 독립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역사적 변화를 이끈 인물이 바로 구스타브 바사(Gustav Vasa)였고, 그는 1523년 스웨덴 왕국의 첫 국왕으로 즉위하며 새로운 국가의 기틀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왕권은 아직 불안정했고, 전국에 걸쳐 귀족들의 영향력이 강했다. 무엇보다 지방은 여전히 자율적이었고, 법도 지역마다 달라 행정이 제각각이었다.이 전환기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페르 브라헤(Per Brahe the Elder, 1520–1590)였다. 그는 전통적인 귀족 가문 출신이지만, 단지 지위를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국가 체계 안에서 귀족과 왕권의 역할을 조정하고, 지방 자치와 중앙..
제국의 땅 위에 구조를 설계한 실무형 설계자의 역사16세기 인도 아대륙은 무굴 제국(Mughal Empire)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티무르와 칭기즈 칸의 후손이라 주장한 바부르의 후예, 아크바르 대제(재위 1556~1605)는 군사적 정복과 종교 관용 정책을 통해 제국의 기반을 다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영토가 넓어지고 문화가 융성해도,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선 경제와 세금 시스템이라는 실무 기반이 반드시 필요했다.바로 이 핵심을 설계한 인물이 토다르 말(Todar Mal)이었다. 그는 무굴 제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토지 조사 및 세금 체계 개혁자이며, 전통적인 관료제가 아닌, 측량과 통계, 문서화 기반의 행정 시스템을 설계한 실무형 설계자였다. 왕은 아크바르였지만, 그의 제국이 지속 가능하도..
역사의 경계에 선 지식인16세기 베트남, 당시 대월(大越)은 무너진 레 왕조 이후 막 왕조(Mạc dynasty)와 부 레 왕조(Restored Lê dynasty)로 나뉘어 서로 왕권을 주장하던 분열과 내전의 시대였다. 이러한 정치적 혼란 속에서 각지의 군벌들은 독자적인 통치를 시도했고, 지방 행정은 붕괴되고 민중은 세금과 전쟁 사이에서 고통받고 있었다. 정통성과 권위가 무너진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힘이 아닌, 질서를 다시 설계할 수 있는 사상과 구조였다.이 시대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응우옌 빈 끼엠(Nguyễn Bỉnh Khiêm, 1491~1585)이다. 그는 유교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현실 정치에 깊은 통찰을 가진 학자였으며, 뛰어난 시인이자 철학자, 그리고 여러 군주와 장군들의 정치 전략 ..
동남아 패권의 교차점에서 국가의 틀을 고민한 왕의 역사15세기 중엽 동남아시아는 정치와 종교, 무역이 얽힌 복잡한 국제 질서 속에 있었다. 말라카 술탄국은 무슬림 무역권을 형성하고 있었고, 캄보디아, 란쌍, 란나 등의 세력이 시암 지역의 권력을 두고 충돌하고 있었다. 아유타야 왕조는 그런 지리적 중심에 놓여 있었지만, 내부는 불안정했다. 지방 귀족들이 실권을 쥐고 관직을 세습하며 중앙의 통제를 약화시키고 있었고, 불교 승단은 사유 재산과 정치 개입으로 종교적 위신을 잃고 있었다.이 상황에서 왕위에 오른 인물이 바로 수라 트라이 록(Somdet Phra Trailokkanat, 재위 1448–1488)이다. 그는 단순한 왕이 아니라, 제도와 질서를 스스로 설계하여 위기를 해결한 국가 설계자였다. 권력 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