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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52937 님의 블로그

산업혁명과 감염병이 공존한 런던의 거리19세기 중반의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도시 중 하나였다. 산업혁명의 여파로 시골에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런던은 인구 과밀, 열악한 주거 환경, 정화되지 않은 상수도 문제로 가득했다. 하수와 식수가 분리되지 않은 곳이 많았고, 오물과 쓰레기가 거리 곳곳에 넘쳐났으며, 수인성 질병의 확산은 시간 문제였다. 특히 콜레라(Cholera)는 당시 영국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은 대표적 감염병이었다.1831년부터 수차례에 걸쳐 콜레라가 런던을 덮쳤으며, 사람들은 그 원인을 명확히 알지 못한 채 ‘나쁜 공기(악취)’가 병을 일으킨다는 ‘미아즈마 이론(Miasma Theory)’을 믿었다. 이러한 이론은 정치와 언론, 심지어 의학계에도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 누..

여성에게 닫혀 있던 학문의 문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의 프랑스는 정치, 철학, 과학, 예술 모든 분야에서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신분 질서와 왕권 중심의 사회 구조를 붕괴시키고, 자유·평등·박애의 이념을 전면에 내세웠다. 혁명 이후에는 나폴레옹이 권력을 잡고 제국을 세우며 프랑스를 유럽의 중심으로 만들었고, 과학과 기술, 군사학이 전략적으로 중요시되었다. 국가 차원에서 수학과 물리학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폴리테크닉(École Polytechnique) 같은 고등기술학교가 설립되며 수학은 실용적인 학문으로 더욱 중요해졌다.그러나 이 모든 진보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회는 여전히 여성의 교육에 매우 제한적이었다. 여성은 대학에 입학할 수 없었고, 수학이나..

산업혁명과 문맹의 그림자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 영국은 역사상 가장 큰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산업혁명은 농촌 중심의 사회를 도시화로 바꾸었고, 공장은 사람들의 노동 시간을 기계처럼 조율했다. 도시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으며, 런던, 맨체스터, 리버풀과 같은 도시에는 수많은 노동자 가족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사회적, 문화적 기반은 급변하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다. 교육은 귀족이나 중산층 이상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고, 대부분의 서민과 노동자 자녀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어린 나이에 공장과 광산으로 보내졌다.이 시기, 영국 정부는 공교육을 체계적으로 운영하지 않았다. 학교는 대체로 교회에서 운영되었으며, 교육의 질은 교사나 지역 사정에 따라 극단적으로 달랐다. 아이들을 교육할 교사는 ..

제국 형성 뒤에서 작동하던 자본 설계의 세계19세기 중반 유럽은 산업혁명 이후 새로운 국가 경쟁 체제로 진입하고 있었다. 정치와 군사만으로는 제국을 유지할 수 없었고, 국가 재정, 투자 자본, 금융 외교는 더 이상 부차적인 요소가 아니라 국가 건설과 통치 전략의 필수 구조로 간주되었다. 산업화와 민족주의, 제국주의가 중첩되며 각국이 국가의 외형을 재설계하던 시기였다. 특히 독일은 여전히 수십 개의 연방국으로 나뉘어 있었고,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간 패권 경쟁 속에서 자금 운용과 금융 주도권은 군사력만큼 중요한 전략 자원이 되었다.당시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군사통합과 정치적 연방 전략을 주도하고 있었지만, 그가 구상한 통일 독일은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프로젝트였다.전쟁 자금, 철도 확장, 산업 기반 구축,..

의료권력과 젠더의 불균형 구조를 바꿔야 했던 19세기 중반19세기 초반 미국과 유럽 사회는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공공보건 문제가 부상하던 시기였다.결핵, 황열, 출산 관련 질병 등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았고, 감염병 확산과 노동자의 건강 악화는 사회 전반의 의료 시스템 개선 요구를 끌어올리고 있었다.그러나 당시 의학계는 여성의 진입 자체를 철저히 차단하고 있었으며,치료는 물론 출산과 산후 관리조차도 전적으로 남성 의사에 의해 수행되던 불균형한 구조였다.의과대학은 남성 전용 기관이었고, 병원 역시 남성 중심 행정 하에 운영되었다.여성은 주로 간호나 조산사 역할로 제한되었고, 이론과 진료를 아우르는 공식적 의학 활동은 불가능했다.이런 환경에서 여성의학의 필요성과 제도적 접근권의 부재는 여전히 '논의의..

독립 이전, 제도 없이 작동하던 식민지 사회18세기 전반의 북아메리카 식민지는 제도적 기반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급속한 도시화와 인구 증가를 겪고 있었다.영국 본국은 행정적으로 식민지를 통제하고 있었지만, 중앙 통제력과 공공 서비스 인프라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으며,법, 교육, 통신, 의료, 안전망 등 핵심 분야는 모두 자생적 형태로 운영되었다.이런 상황에서 실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조적 틀을 만든 인물은 매우 드물었으며, 제도 설계와 운영이 가능했던 사례는 극히 예외적이었다.1720년대부터 1740년대까지, 식민지 사회는 급속한 인구 팽창과 도시 밀집 현상에 따라 화재, 범죄, 질병, 문맹 등의 문제가 표면화되었고, 지방 공동체 내부에서 복합적 해결책을 요구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식민지 사회에..

계몽기의 과학, 그리고 지식 구조의 불평등한 설계18세기 유럽은 계몽주의의 절정기였다.철학, 과학, 정치, 문학 등 모든 영역에서 인간 이성과 합리성을 중심으로 사회 구조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었고,프랑스는 그 중심지였다. 아이작 뉴턴의 고전역학, 라이프니츠의 수학, 데카르트의 철학은이 시기의 지식 구조를 형성하는 핵심 이론들이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지식의 질서와 해석의 구조가 구축되고 있었다.하지만 이러한 계몽의 물결 속에서도, 지식의 구조는 남성 중심으로만 설계되고 있었다.여성은 대학과 과학 아카데미에 참여할 수 없었으며, 공식적인 학문 활동은 배제되었다.그들의 기여는 기록되지 않거나, 남성 지식인의 그림자 속에서 사라졌다.이러한 환경 속에서 과학, 수학, 철학을 독립적으로 습득하고,더 나아가 ..

‘시간’이 무기가 되던 제국주의 시대18세기 유럽은 제국주의 경쟁이 본격화되던 시기였다.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등은 각자 해상 식민지 확장 경쟁을 벌이며, 세계 곳곳에 무역기지와 군사 거점을 설치하고 있었다.이러한 제국의 확장을 가능하게 한 것은 단순한 무기력만이 아니라, 정밀한 항해 기술과 측량 능력, 즉 ‘시간과 위치의 정확한 계산 능력’이었다.당시 배들은 경도(위도는 천문학적으로 쉽게 측정 가능했지만, 경도는 어려웠음)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항로를 잃고 침몰하거나 식량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국은 “해상에서 정확한 경도를 측정할 수 있는 정밀 시계 개발”에 엄청난 투자를 하기 시작한다.이는 단순히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생존과 제국의 운명을 좌우하는 전략적 과제..

산업화 역사의 태동18세기 후반의 유럽은 산업화 직전의 격동기였다. 영국에서는 섬유 산업과 증기기관을 중심으로 산업혁명이 태동하고 있었고, 프랑스 역시 기술과 생산 방식의 근본적 혁신을 준비 중이었다. 프랑스 정부는 전통적인 수공업 중심 경제에서 국가 주도의 제조 산업 체계로 전환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으며, 특히 화학 산업은 군수, 농업, 섬유, 유리 산업 등 모든 분야와 연결되어 있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분야였다.이 시기 프랑스는 소금, 알칼리, 비누, 염료, 유리 등 생활과 산업 전반에 필수적인 자재를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었고, 이는 막대한 비용과 외교적 종속을 초래하고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이를 해결하고자 자국 내에서 화학 원료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과 구조를 요구했고, 이런 국..

궁정 음악에서 시민 음악으로18세기 유럽은 문화적으로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음악은 더 이상 오직 왕실과 귀족만의 소유물이 아니었다. 도시의 부유한 시민 계층이 점차 성장하며, 음악이 대중의 문화이자 교육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오페라, 교향곡, 실내악 등 음악 장르가 폭발적으로 발전했고, 음악은 공연예술에서 교육·사회적 교양으로 확장되었다.이 시기는 바로크에서 고전주의로 넘어가는 시기였고, 음악은 더 이상 작곡가 혼자만의 감성이 아니라 구조와 논리, 이론과 교육 시스템에 기반을 두게 되었다. 많은 유럽 국가들은 궁정 악단과 음악학교를 통해 표준화된 연주법과 작곡 교육을 제도화하려 했고, 그 중심에 있던 도시 중 하나가 바로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Salzburg)였다.잘츠부르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