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서막: 2세기 고구려, 강철의 나라와 굶주린 백성
이번에 우리가 만나볼 역사의 무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1,800년 전, 드넓은 만주 벌판을 호령하던 철의 왕국, 고구려입니다. 2세기 후반의 고구려는 끊임없이 영토를 확장하며 강력한 국가의 기틀을 다져가던 시기였습니다. 서쪽으로는 막강한 한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쉴 새 없이 충돌했으며, 북쪽의 혹독한 기후와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구려인들은 강인한 정신력과 뛰어난 무예를 바탕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정복 전쟁의 이면에는 깊은 그림자가 있었습니다. 계속되는 전쟁은 국가의 재정을 고갈시키고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으며,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재해가 닥치면 굶주림은 순식간에 나라 전체를 뒤덮었습니다. 당시 고구려의 권력은 왕에게 완전히 집중되지 않았습니다. 5개의 강력한 부족 연합체에서 출발한 고구려는 각 지역의 대대로 내려오는 강력한 귀족들이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굶주린 백성들은 가혹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살던 땅을 버리고, 더 많은 부를 축적하려는 귀족의 노비가 되거나 유랑민으로 떠돌며 나라의 근간을 흔들었습니다. 강한 군사력도, 넓은 영토도 굶주린 백성 앞에서는 모래성과 같았습니다. 나라는 커지지만 백성은 가난해지는 모순, 바로 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한 명의 위대한 설계자가 역사의 부름을 받게 됩니다.

역사의 부름에 응답한 숨은 설계자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고구려의 아홉 번째 왕, 고국천왕이 즉위합니다. 그는 형제 상속이 아닌 부자 상속으로 왕위에 오른 첫 번째 왕으로서, 기존 귀족 세력을 견제하고 절대적인 왕권을 확립해야 한다는 절박한 과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라를 안정시킬 새로운 인재를 간절히 원했고, 가문이나 신분이 아니라 오직 능력만으로 사람을 뽑겠다는 파격적인 인재 등용책을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곳곳에 숨어있는 현명한 인재를 찾아오라고 명했습니다. 이때 신하 안유가 한 사람을 추천합니다. 바로 서압록곡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세상의 명예와 권력에는 등을 돌린 채, 밭을 갈며 조용히 살아가던 선비, 을파소였습니다. 고국천왕은 즉시 그를 불러 중외대부라는 높은 벼슬을 내렸지만, 을파소는 "현명한 임금은 신하를 마음대로 부리지 않고, 충성스러운 신하는 자신의 능력을 헤아려 벼슬을 받습니다. 저 같은 능력이 없는 사람은 왕의 큰 뜻을 따를 수 없습니다"라며 정중히 거절합니다. 그는 왕이 단지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도구로 자신을 쓰려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마음을 가졌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의 깊은 뜻을 알아차린 고국천왕은 자신의 진심을 보이고자, 마침내 나라의 모든 일을 총괄하는 최고 관직인 '국상'의 자리를 내어줍니다. 그제야 을파소는 왕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낡고 병든 고구려를 근본부터 개혁할 자신의 원대한 설계를 펼칠 준비를 시작합니다. 그는 권력의 중심에 화려하게 등장한 인물이 아니라, 시대의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역사가 직접 불러낸 진정한 숨은 설계자였습니다.
숨은 설계자가 그린 민생의 역사, 진대법
국상의 자리에 오른 을파소가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굶주린 백성들의 문제였습니다. 그는 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며, 왕은 백성을 하늘처럼 여겨야 합니다. 지금 창고에는 곡식이 쌓여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으니, 이는 나라를 잘못 다스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는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시스템, 바로 '진대법(賑貸法)'을 설계하여 제안합니다. 진대법의 원리는 간단하면서도 획기적이었습니다. 매년 봄, 작년 가을에 수확한 식량이 다 떨어지고 아직 보리는 여물지 않은 '춘궁기'가 되면, 굶주림이 가장 극심한 가난한 집안에 나라의 창고를 열어 곡식을 빌려줍니다. 그리고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가을이 되면, 빌려 갔던 곡식을 아주 낮은 이자 혹은 무이자로 갚게 하는 제도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자선 활동을 넘어선 정교한 국가 경영 시스템이었습니다. 을파소의 설계는 두 가지 핵심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 백성들이 굶주림 때문에 자신의 땅을 귀족에게 헐값에 팔거나, 고리대에 시달리다 결국 노비로 들어가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백성의 삶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귀족의 사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견제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둘째, 안정된 자영농민층을 국가가 직접 보호하고 확보하여, 나라의 세금을 꾸준히 걷고 국력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진대법은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따뜻한 복지 정책인 동시에, 왕권을 강화하고 나라의 시스템을 바로 세우는 날카로운 정치적 설계였던 것입니다.
천년의 역사를 관통하는 지혜
을파소가 설계한 진대법은 고구려 사회에 즉각적이고 강력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백성들은 나라의 보호 아래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고, 흩어졌던 민심은 왕에게로 향하며 강력한 신뢰를 보냈습니다. 당연히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을 위협받게 된 귀족들의 거센 반발도 있었지만, 고국천왕의 굳건한 지지 아래 진대법은 고구려 멸망의 날까지 이어지는 핵심적인 제도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위대한 숨은 설계자의 지혜는 단순히 한 시대, 한 나라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을파소가 만든 진휼 제도의 정신, 즉 '국가가 백성의 최소한의 삶을 책임진다'는 위대한 원칙은 이후 천년이 넘는 한국사 내내 깊숙이 이어졌습니다. 고려 시대에 흉년에 백성을 구제하던 기관인 '흑창', 그리고 조선 시대의 국가 대여 제도인 '환곡'은 모두 그 이름과 형태는 다를지언정, 진대법이라는 위대한 설계도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을파소는 칼과 창으로 영토를 넓히는 대신, '시스템'이라는 보이지 않는 도구로 나라의 근본을 튼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한 사람의 깊은 지혜와 따뜻한 마음이 어떻게 한 나라의 역사를 바꾸고, 수많은 백성의 삶을 지켜낼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화려한 전쟁 영웅은 아니었지만, 나라의 미래를 위한 가장 중요한 시스템을 만든 을파소야말로, 우리 역사가 기억해야 할 가장 위대한 숨은 설계자 중 한 명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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