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은 설계자

[역사의 숨은 설계자]10. 고대 유대 사상과 헬레니즘 철학을 설계한 필론(Philo of Alexandria)

diary52937 2025. 6. 29. 22:20

로마 지배 아래의 다문화 도시 알렉산드리아

기원전 1세기 말, 이집트는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고, 수도 알렉산드리아는 당시 동지중해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다. 이 도시는 기원전 332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그리스인, 이집트인, 유대인, 로마인들이 함께 살아가는 다민족·다종교 도시로 성장했다. 알렉산드리아는 그리스 철학, 이집트 신비주의, 로마 행정 문화, 유대 율법 사상이 혼합된 지식의 교차로였다.

이 도시의 유대인 공동체는 규모가 컸고, 약 10만 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로마의 총독과 헬라 문화권 다수파는 이 유대인들을 때때로 경계했고, 종교적·문화적 긴장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었다. 이처럼 제국의 식민도시이자 문화 융합의 시험장이었던 알렉산드리아에서, 전통 신앙을 지키며 다른 문명과 소통할 수 있는 사상적 설계자가 필요해졌다. 바로 이때 필론(Philo of Alexandria)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철학과 신앙을 잇는 유대 지식인의 실천

필론은 기원전 약 20년경, 알렉산드리아의 유복한 유대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로마와도 정치적 연결이 있었고, 알렉산드리아 유대 공동체 내에서도 영향력 있는 집안이었다. 필론은 히브리 경전(토라)을 배우는 전통 교육을 받았고 동시에, 플라톤, 피타고라스, 스토아 학파 철학 등 헬레니즘 지식 체계도 깊이 있게 습득했다. 그는 지식을 단순히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과 현실을 연결하는 실천적 설계도구로 삼았다.

기원후 38년, 로마 총독 플라쿠스는 알렉산드리아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를 시작했으며, 유대 회당을 파괴하고, 유대인의 시민권을 부정했다. 이때 필론은 알렉산드리아 유대인을 대표하여 로마 황제 칼리굴라에게 항의 사절단을 이끌고 출정한다. 그는 로마에서 정치적 위험을 무릅쓰고 철학적 언어로 유대인의 종교와 존재를 변호했다. 종교인이라기보다는, 이해와 조화를 전략적으로 설계한 행동하는 철학자였다.

헬레니즘 철학과 고대 유대 사상을 연결한 유대인 필론(Philo of Alexandria)

사상 충돌의 갈등을 통합 구조로 전환한 숨겨진 설계자

필론이 살던 시대는 유대교가 로마 제국 내에서 오해받고 고립되기 쉬운 종교였다. 특히 히브리어 경전은 당시 지식 계층이 사용하는 그리스어 세계에서 낡은 신화처럼 취급되기도 했다. 필론은 이러한 간극을 좁히기 위해, 유대교 신앙을 그리스 철학의 문법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는 서로 대립하던 문화와 사상의 언어를 설계적으로 통합했다.

예를 들어, 그는 유대 율법을 단순한 종교 규칙이 아닌 '자연 질서의 표현'으로 해석하며, 모세를 법 제정자인 동시에 철학자이자 도덕 교사로 재조명했다. 성경 속 사건들을 단어 하나하나 분석하며 은유적 의미(알레고리)를 끌어내는 방법은 플라톤의 형이상학을 기반으로 하되, 유대인의 신 개념과 연결되도록 조율했다. 필론은 정체성과 철학을 충돌이 아닌 연결의 구조로 바꾼 설계자였다.

로고스를 통한 신과 세계의 다리 건설한 사상 체계의 설계자

필론 철학의 핵심은 ‘로고스(Logos)’라는 개념이다. 그리스 철학에서 로고스는 ‘말’ 또는 ‘이성’, 혹은 세계를 움직이는 근본 원리’를 의미했다. 필론은 이 개념을 유대 전통의 ‘말씀’(하나님의 창조의 도구)과 연결지어, 하나님이 인간과 세상을 이어주는 중개자로서 로고스를 설명했다. 그는 “하나님은 직접 인간 세계에 다가오지 않지만, 로고스를 통해 이성과 질서를 전한다”고 썼다.

예를 들어, 필론은 창세기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라는 구절에서, ‘말씀’이 바로 로고스이며, 이 로고스를 통해 세상이 구조화되었다고 해석했다. 이 해석은 단순히 철학적 표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신과 유한한 인간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사상적 다리 설계였다. 로고스는 신이 멀지 않음을 설명하고, 인간 이성이 신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철학적 장치였다.

이 사상은 이후 초기 기독교의 요한복음 1장 1절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신과 인간,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을 연결하는 설계 도구로서 기능했다. 필론은 단어 하나를 통해 사상의 세계를 구조화하고, 종교와 철학 사이의 논리적 구조를 만들어낸 설계자였다.

세계관의 통합 설계자 

필론의 대표 저작으로는 [천지 창조에 관하여], [비유적 해석], [특수율법에 관하여] 는 모세오경을 중심으로 한 방대한 주석서들이다. 그의 저작들이 생전에 널리 읽히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상 간 이해를 위한 다리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는 국가를 세우지도 않았고, 종교를 창시하지도 않았지만, 문명 사이의 긴장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구조를 만든 설계자였다. 철학자와 종교 지도자들이 그의 방법을 빌려 서로 다른 세계를 대화하게 만들었다.

오늘날 필론은 종교 간 대화나, 철학과 신학의 접점을 다룰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인물 중 하나이며, ‘비유와 해석의 철학’은 교육, 법, 윤리 분야에서도 참고되고 있다. 그는 특정 종교의 지도자가 아니라, 생각의 체계를 짜고 갈등을 이해 가능한 구조로 전환한 지적 조율자였다.

그의 이름은 유명하지 않지만, 그가 설계한 해석 방식과 언어는 이후 수백 년간 이어졌고, 지금도 여전히 문화 간 이해의 핵심 열쇠로 사용되고 있다. 필론은 철학자가 아니라 사상을 구조화한 설계자였고, 그 구조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