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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52937 님의 블로그

제국주의와 전쟁이 만연한 19세기 유럽19세기 중반의 유럽은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제국주의적 팽창 경쟁에 돌입하고 있었다.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등 강대국들은 식민지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으며, 이는 유럽 대륙 내부의 크고 작은 전쟁을 반복적으로 유발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 시기 전쟁은 현대적 무기를 사용했지만, 부상자에 대한 구조 체계는 거의 부재했고, 전투가 끝난 후에도 병사들은 버려진 채 고통 속에 죽어갔다.특히 1859년에 벌어진 솔페리노 전투(Battle of Solferino)는 이러한 시대의 전형적인 사례였다. 사르데냐 왕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오스트리아 제국군과 맞붙은 이 전투는, 단 하루 동안 4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며 참혹한 인명 피해를 기록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적군..

산업의 혁명의 18세기 후반 영국18세기 중반부터 영국은 세계 최초의 산업혁명을 본격적으로 겪고 있었다. 섬유 생산을 자동화한 방적기, 석탄 기반의 증기기관, 그리고 광산과 공장을 잇는 운송 인프라 등은 모두 기계 중심 사회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공장 내부의 혁신으로 그치지 않았고, 도시의 위생, 안전, 수공예품의 정밀도, 생활 인프라 전반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이 시기에는 제임스 와트(James Watt)의 증기기관 개량이나 리처드 아크라이트(Richard Arkwright)의 방적공장처럼 거대한 기술적 혁신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보다 실용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다수의 소형 발명가들 또한 산업화의 숨은 동력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인물들은 자신만의 도구와 기계를 만들어 생활..

산업화가 가정으로 스며들기 시작한 19세기 말 미국19세기 후반의 미국은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새로운 사회 질서를 구축하고 있었다. 철도와 증기기관이 전국을 연결하고, 대량 생산 기술은 식료품, 의류, 가전제품에까지 확대되었다. 도시에서는 여성의 역할이 전통적인 가사 중심에서 점차 공장 노동자, 교사, 발명가 등 새로운 영역으로 넓어지고 있었으나, 여전히 대부분의 기술과 특허는 남성 중심으로 이뤄졌다.이 시기는 또한 미국의 중상류 계층 여성들이 ‘사교와 살림’을 동시에 수행해야 했던 이중 부담이 있었던 시기였다. 가정에서 연회를 주관하거나 손님 접대를 자주 하던 여성들은 많은 식기를 사용한 후 반복되는 세척 작업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의 설거지는 노동력이 많이 들고 번거로웠고, 손으로 식기를 씻는 과..

18세기 스페인 제국의 위기18세기 중반의 스페인은 광대한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내부 행정 시스템은 비효율과 부패에 찌들어 있었다. 필리핀, 카리브 해, 멕시코, 남아메리카 등지에서의 스페인 통치는 무력과 신앙을 기반으로 유지되었으나, 지방 행정력은 약화되고 세수 확보는 어려워지면서 제국은 점차 정체에 빠졌다.이 시기의 유럽은 계몽주의와 합리주의가 지적·정치적 흐름으로 번져가고 있었고, 프랑스와 영국은 이를 기반으로 행정과 교육, 군사 시스템의 근대화를 추진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스페인은 여전히 구세대적 봉건 체제를 유지했으며, 왕권 중심의 절대주의가 경제 발전과 인재 등용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이런 가운데 등장한 것이 바로 ‘부르봉 개혁(Bourbon Reforms)’이라 불리는 일련의 정책..

격동의 청나라, 사상적 전환을 부르다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엽에 이르는 중국은 청나라의 통치가 구조적으로 약화되며 내적 위기를 겪던 시기였다. 내부적으로는 백련교의 난과 같은 민란이 끊이지 않고, 인구 증가로 토지 부족과 농민 빈곤 문제가 심각해졌다. 건륭제 말기부터 제국의 행정 시스템은 점점 더 부패와 비효율에 물들었고, 관료 계층은 형식적인 성리학적 해석에만 의존하며 현실 문제에 대한 대응 능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에 따라 조세제도, 수리(水利), 국방, 인재 선발 등 실무 행정에서 지식과 실천의 괴리가 점차 커졌다.이 시기는 또한 서양 열강의 접근과 상업의 확대로 인해, 전통적 가치관과 외부 변화가 충돌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아편 전쟁(1839~1842)은 그 절정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전..

제국의 압력 속 전통과 계몽이 충돌하던 인도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 인도는 격렬한 사회적, 정치적 전환기를 겪고 있었다. 무굴 제국의 쇠퇴와 함께 영국 동인도회사의 식민 지배가 본격화되었고, 그에 따라 서양 교육과 법률 체계, 경제 제도가 인도 사회 깊숙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인도 내부에서는 카스트 제도, 여성 억압, 미신적 풍습 등 전통의 이름으로 유지되던 여러 사회문제가 점점 더 부각되기 시작했다.당시 인도의 지식인들은 영국 문화의 유입을 거부하기보다는, 자국의 전통과 외래 문화를 종합하여 새로운 사회 윤리를 구축하고자 하는 시도를 모색했다. 바로 이 시기에 등장한 인물이 라자 람 모한 로이(Raja Ram Mohan Roy)였다. 그는 힌두교적 뿌리를 유지하면서도, 서양의 합리주의와 인..

계몽과 전쟁 사이에서 과학이 구조화되던 유럽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는 유럽 역사에서 정치적 혼란과 지적 진보가 겹쳐진 시기였다. 프랑스 혁명(1789)을 시작으로 유럽 전역은 혁명과 반혁명, 전쟁과 개혁이 교차하는 시대를 맞이하였다. 이러한 불안정한 정치 환경 속에서도, 지식의 세계는 계몽주의의 유산을 바탕으로 더욱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방향으로 발전했다. 특히 수학은 과학, 공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는 핵심 언어로 떠올랐고, 함수해석학, 수치해석, 기하학의 일반화와 같은 흐름이 두드러졌다.이 시기의 수학자들은 단순한 계산법을 넘어서 수학의 본질, 무한 개념의 다루기, 그리고 복잡한 수식을 현실에 적용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했다. 수학은 더 이상 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공공 정책, 과학 실..

가정과 질서가 강조된 빅토리아 시대 19세기 중반 영국은 산업혁명과 제국주의의 영향으로 사회경제적 대변화를 겪던 시기였다.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농민 계층이 노동계급으로 재편되며 중산층이라는 새로운 사회계급이 부상하였다. 이 중산층은 물질적으로 안정되었지만, 동시에 계층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품위 있는 생활 방식’을 학습하고 재생산하는 문화적 도구를 필요로 했다.빅토리아 시대(1837~1901)는 도덕과 규율, 가정과 질서가 강조된 시기였으며, 여성은 ‘가정의 수호자’라는 사회적 역할을 부여받았다. 남성은 외부에서 경제 활동을 담당하고, 여성은 내부에서 가사와 자녀 교육, 건강, 소비관리 등을 책임져야 한다는 성 역할 구분이 뚜렷해졌다.그러나 산업화로 인해 여성의 실제 업무 범위는 더욱 복잡해..

제도적 인종차별과 분리의 미국 사회20세기 초중반 미국은 겉으로는 산업과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겪고 있었지만, 인종적 불평등과 차별은 미국 사회 전반을 지배하던 근본 구조였다. 남북전쟁(1861~1865) 이후 노예 제도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지만, 그 대체제로 작동한 것이 징크로우법(Jim Crow Laws)이라고 불리는 법적·사회적 분리제도였다.이 법 아래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백인과 같은 공공시설을 이용할 수 없었고, 학교, 병원, 식당, 버스 좌석, 화장실까지 모두 ‘분리’된 상태였다. 특히 1930년대 이후 자동차가 보편화되며 많은 미국인들이 고속도로 여행과 자동차 관광을 즐기기 시작했지만, 흑인 시민들에게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닌 생존과 위험을 고려한 행위였다.많은 모텔, 주유소, 식당이 ..

19세기 찰스 배비지의 해석기관 설계19세기 영국 과학계에서는 수학적 모델링, 수치 계산, 알고리즘의 효율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당시로선 전산기계(computing machine)는 미래 기술이 아닌 추상적 이론에 가까운 영역이었다. 그 중심에는 수학자 찰스 배비지(Charles Babbage)가 있었다. 그는 계산 오류를 줄이기 위한 차분기관(Difference Engine)과, 더욱 복잡한 계산을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는 해석기관(Analytical Engine)을 설계하였다.하지만 그의 설계는 너무 앞서 있었기에, 이를 이해하고 확장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바로 이때, 수학에 천재적 감각을 지녔던 한 여성이 등장하게 된다. 그녀는 에이다 러브레이스(Ada Lovelace)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