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적 인종차별과 분리의 미국 사회
20세기 초중반 미국은 겉으로는 산업과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겪고 있었지만, 인종적 불평등과 차별은 미국 사회 전반을 지배하던 근본 구조였다. 남북전쟁(1861~1865) 이후 노예 제도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지만, 그 대체제로 작동한 것이 징크로우법(Jim Crow Laws)이라고 불리는 법적·사회적 분리제도였다.
이 법 아래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백인과 같은 공공시설을 이용할 수 없었고, 학교, 병원, 식당, 버스 좌석, 화장실까지 모두 ‘분리’된 상태였다. 특히 1930년대 이후 자동차가 보편화되며 많은 미국인들이 고속도로 여행과 자동차 관광을 즐기기 시작했지만, 흑인 시민들에게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닌 생존과 위험을 고려한 행위였다.
많은 모텔, 주유소, 식당이 흑인을 거부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그들의 존재 자체가 위협으로 여겨졌고, 물리적 폭력이나 체포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처럼 일상 속에도 차별과 공포가 자리잡은 시대에서, 한 인물은 “어디에서 안전하게 식사하고, 주유하고, 머물 수 있는지”를 스스로 조사하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가 바로 빅터 그린(Victor Hugo Green)이었다. 그는 교통과 여행이라는 생활 영역에 인권과 존엄의 경로를 설계한 시민 설계자였다.
평범한 우체부에서 민권 설계자가 되다
빅터 휴고 그린은 1892년 11월 9일, 미국 뉴욕주 맨해튼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애는 일반적인 흑인 중산층 가정의 구성원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교육을 받았고, 하렘(Harlem) 지역에서 미국 우체국 직원으로 근무하였다. 당시 많은 흑인들이 관공서나 우편 노동 분야에 종사했으며, 그도 1920년대부터 수십 년간 안정적인 직장을 유지했다.
그러나 그가 일상에서 마주친 불합리, 즉 여행 중 겪는 차별과 수모는 그를 가만히 있게 하지 않았다. 그는 뉴욕을 벗어나 자동차 여행을 하던 중 흑인 여행자가 어디에서 숙박이 가능한지, 어떤 식당이 서비스를 제공하는지를 파악하는 일이 매우 어렵고 위험하다는 사실을 실감하였다. 그 경험은 그에게 기록자로서의 사명을 부여하게 된다.
1936년, 그는 처음으로 『더 니그로 모터리스트 그린 북(The Negro Motorist Green Book)』이라는 가이드를 발행하게 된다. 첫 판은 뉴욕과 뉴저지 지역을 중심으로 몇 개의 업소 정보만을 수록했지만, 이후 해마다 개정되며 미국 전역을 아우르는 전국적인 생존 안내서로 확장되었다.
빅터 그린은 1960년 뉴욕에서 사망할 때까지 이 안내서의 편집자이자 발행인으로 일했으며, 그의 사후에도 부인은 그린 북의 발행을 이어나갔다. 그는 한 번도 대형 정치무대에 서지 않았고, 명문대를 다니지도 않았지만, 수백만 흑인 여행자에게 실질적인 생존 정보를 제공한 ‘생활 속의 민권 설계자’로 기억된다.
여행과 생존의 도구
빅터 그린의 대표적 업적은 단연 ‘그린 북(Green Book)’의 창간과 지속적 발행이다. 이 책은 단순한 상업용 가이드가 아니었다. 차별과 폭력의 공포 속에서 흑인들이 ‘어디서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가’를 알려주는 생존 매뉴얼이었다. 이 안내서는 단순한 주소와 전화번호 목록이 아니라, 흑인 소유의 비즈니스, 차별 없는 주유소, 이해심 있는 백인 업소 등 사회적 신뢰망까지 조직한 문서였다.
그린 북은 매년 여름 휴가철을 중심으로 발행되었으며, 최대 50개 주와 캐나다, 멕시코, 카리브해 지역까지 포함한 광범위한 범위를 다루었다. 특히 1940년대~50년대에는 연간 수십만 부가 발행될 정도로 널리 사용되었다. 그린 북 덕분에 수많은 흑인 가족들은 불안 없이 자동차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당시 흑인 중산층의 형성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빅터 그린은 ‘그린 북’의 서문에서 “어느 날, 이 책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오기를 희망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발언은 그가 단순히 사업이나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사회 변화까지 내다보며 활동한 사회적 설계자였음을 보여준다.
흑인 중산층의 자유와 존엄을 연결한 안내서
그린 북은 단지 ‘어디를 갈 수 있는가’만 알려준 것이 아니라, 흑인 여행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권리를 확인시켜주는 상징적 도구로 기능하였다. 그린 북을 소지한 흑인들은 ‘우리는 환영받을 수 있는 장소를 알고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흑인 여행자가 느기는 두려움, 배제, 차별을 완화하는 데 실직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는 자신들의 시민권과 자유를 실천하는 일상적 방식이었다.
지역적으로는 그린 북에 포함된 업소들이 흑인 커뮤니티 내 경제 활성화에도 큰 기여를 했다. 특히 흑인 소유 식당, 모텔, 주유소, 미용실 등은 그린 북을 통해 전국 고객과 연결되었고, 이는 단순한 상업적 기회를 넘어서 지역 내 경제적 자립 기반 구축에 기여했다.
또한 그는 대도시뿐 아니라 농촌, 시골 지역까지 포함된 전국적 네트워크를 설계하였으며, 이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전국적 이동성과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적 기반이 되었다. 남부 지역의 극단적인 인종 차별 환경 속에서도, 그린 북은 살아남는 지혜이자 존엄의 무기가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빅터 그린은 공직자나 정치인은 아니었지만, 정책보다 더 강력하게 흑인의 ‘이동할 권리’를 실현시킨 실제적 실행자로 평가받는다.
잊혀졌던 기록자에서 ‘인권 인프라 설계자’로 재조명되기까지
빅터 그린과 그의 그린 북은 1964년 미국에서 민권법(Civil Rights Act)이 제정되며, 공식적인 인종 분리 정책이 철폐된 후 점차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린 북의 발행도 1966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되었고, 빅터 그린 역시 오랫동안 교과서나 주류 역사 속에 소개되지 않았다. 그는 20세기 흑인 사회를 떠받친 중요한 인물이었지만, '조용한 실천자'로만 기억되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그린 북은 다시 주목받는 역사적 유산으로 부활하였다. 2018년에는 그린 북을 모티브로 한 영화 <Green Book>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빅터 그린의 이름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다만, 이 영화는 실존 인물 그린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그가 만든 시스템의 존재가 영화의 역사적 배경으로 기능했다는 점에서 그의 영향력이 간접적으로 재조명되었다.
한편 일부 비판적인 시각에서는, 그린 북이 “차별을 받아들이고 그 틀 안에서 생존을 도운 것 아니냐”는 질문도 제기된다. 그러나 많은 역사가들은 이에 대해 “그린 북은 차별을 정당화한 것이 아니라, 차별 속에서도 공동체의 생존과 존엄을 지키기 위한 전략적 도구였다”고 평가한다.
오늘날 빅터 그린은 인권 인프라를 만든 실무형 설계자로서 다양한 박물관, 도서관, 학교 교육자료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미국 전역의 흑인 역사 박물관과 시민권 박람회에서는 그린 북 복사본이 전시되며, 그의 삶과 업적이 실생활 중심의 민권 운동 사례로 소개되고 있다.
그는 “모든 시민이 차별 없이 여행할 수 있는 권리”라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를 위해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만든 설계자로 평가받는다. 그의 유산은 단지 책 한 권이 아니라, 존엄과 정보, 실천이 결합된 행동 지침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