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은 설계자]49. 존 해리슨(John Harrison)_항해 혁명을 이뤄낸 시간 설계자
18세기 해양 제국의 시대
18세기 유럽은 바다를 중심으로 세계를 확장하던 시대였다. 영국은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와 함께 식민지와 해상 무역을 장악하기 위한 치열한 항해 경쟁을 벌이고 있었고, 해군력과 항법 기술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였다. 하지만 당시 선박 항해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바로 경도(Longitude)를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위도는 태양의 고도나 별을 기준으로 비교적 쉽게 측정할 수 있었지만, 경도는 측정할 방법이 없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선박이 항로를 벗어나거나, 암초에 부딪히거나, 항구를 찾지 못해 침몰하는 사고가 빈번했다. 실제로 1707년, 영국 해군의 4척의 배가 경도 계산 오류로 침몰해 수천 명이 사망한 스킬리 제도 참사는 영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에 영국 의회는 1714년, 정확한 경도 측정 방법을 개발하는 사람에게 최대 2만 파운드(오늘날 수십억 원 규모)의 상금을 주겠다는 ‘경도법(Longitude Act)’을 제정했다. 이는 과학계와 기술자들에게 도전장을 던진 셈이었고, 그 도전 속에서 한 무명의 목수 출신 남성이 이름을 올리게 된다. 그가 바로 존 해리슨이었다.
시계를 짓던 목수가 세계 항로를 그리다
존 해리슨은 1693년 3월 24일, 영국 요크셔(Yorkshire)의 펄비 브리지(Pubby Bridge)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지역 목수였으며, 해리슨도 어릴 때부터 목재 다루는 기술과 기계 장치에 대한 감각을 키워갔다. 그는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기계공학, 시계 제작 기술, 천문학, 금속공예까지 익혔다. 20세 무렵에는 자신만의 장치로 정확한 대형 진자시계를 제작해 지역 교회와 저택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금속의 팽창, 마찰, 진자의 흔들림이 시계 오차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관찰하며, 정밀한 시간 측정 장치 개발에 몰두했다. 해리슨은 ‘경도 측정의 해답은 시계에 있다’고 확신하고, 바다에서도 정확하게 작동할 수 있는 시계를 만들기 위해 전 생애를 바쳤다. 1730년대부터 그는 해양용 시계인 ‘해양 크로노미터(Marine Chronometer)’의 초안을 설계했고, 이후 수차례의 개선을 거쳐 H1, H2, H3, H4라는 시계 시리즈를 제작했다.
그의 네 번째 모델인 H4는 1761년 대서양을 횡단하는 항해에서 놀라운 정확도를 입증했고, 시계로 경도를 측정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하지만 그가 기대한 상금은 쉽사리 지급되지 않았다. 수년간의 정치적, 과학적 논쟁과 평가 과정을 거친 후, 그는 1773년이 되어서야 80세가 넘은 나이에 조지 3세의 개입으로 공식적으로 왕실로부터 공로를 인정받고 상금을 받게 되었다. 그는 1776년 3월 24일, 런던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영국 과학사에 조용히 이름을 남겼다.
해양 항법 역사상 최초의 정확한 시간 측정
존 해리슨의 최대 업적은 바다 위에서도 정확한 시간을 유지할 수 있는 기계식 시계, 즉 해양 크로노미터(Marine Chronometer)를 개발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시계가 아니라, 경도 측정을 위한 정밀한 과학 도구였다. 지구는 360도를 하루 24시간에 한 바퀴 회전하기 때문에, 한 시간은 15도에 해당한다. 따라서 출발 항구의 시간과 현재 위치의 태양 시간을 비교하면, 경도를 계산할 수 있다. 문제는 당시의 시계가 바다의 흔들림, 습기, 온도 변화 등으로 인해 오차가 너무 커서 실용성이 없었다는 점이다.
해리슨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창의적인 기술을 도입했다. 그는 온도 변화에 따라 늘어나는 금속을 보완하기 위해 두 금속을 겹쳐 만든 보상 진자(gridiron pendulum)를 고안했고, 마찰을 줄이기 위한 윤활 기법, 균형추 조절 등을 반복적으로 실험했다. 결국 그의 H4 크로노미터는 대서양 항해 중 2개월이 넘는 항해에서도 단 5초 이내의 오차만을 보이며 경도 계산에 성공했고, 이는 해양 항법 역사상 최초의 정확한 시간 측정이었다.
해리슨의 시계는 이후 수많은 해군과 상선, 탐험선에서 활용되었고, 세계 지도 제작, 항해 안전, 해양 무역, 군사 작전 등 전 분야에서 핵심 도구로 자리잡았다. 오늘날 GPS 시스템의 원리도 시간과 위치 계산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그의 업적은 디지털 시대의 항법 시스템의 기초로 평가된다. 그는 시계를 단순한 시간 측정 도구가 아닌 지구 공간을 탐색하는 과학 장비로 바꿔 놓은 발명가였다.
영국의 해양 제국 역사에 기여
존 해리슨의 크로노미터는 단순히 기술적 발명에 그치지 않고, 영국의 해양 전략과 국가 성장에 직접적인 기여를 했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까지 영국은 세계의 바다를 지배했고, 그 중심에는 보다 정확한 항법 기술이 있었다. 해리슨의 시계는 선박이 자신이 있는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만들어, 무역 항로의 개척, 해상 충돌의 감소, 식민지 확장 등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영국 해군은 해리슨의 크로노미터를 채택하여 장거리 작전과 항해의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이는 다른 유럽 국가보다 빠르게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해상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또한 해리슨의 시계는 항해 교육기관, 해군 사관학교, 지도 제작기관에 보급되며 영국 과학기술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한편, 해리슨은 공식적인 교육 없이도 순수한 관찰과 실험, 그리고 독학을 통해 과학 기술에 혁신을 일으킨 비정통 지식인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는 왕립학회나 대학의 일원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용적 기술로 세계를 바꾼 대표 사례로 기록되며, 이후 수많은 자생 기술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바꾼 기술 설계자
오늘날 존 해리슨은 단순한 시계 제작자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류의 이해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설계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크로노미터는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전 세계 항해의 표준 장비로 사용되었고, 정밀 시간 측정 기술의 상용화와 과학화에 길을 열었다. 특히 GPS 위성과 전파 항법 시스템은 ‘정확한 시간’ 없이는 작동할 수 없으며, 현대 위치 기술의 뿌리가 해리슨의 시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그는 ‘정확성의 과학’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대표 인물이다. 복잡한 수학 이론보다, 실제 환경에서 작동하는 정밀 기계를 만드는 데 집중했던 그의 방식은 현대의 엔지니어링 사고, 실용주의적 과학관, 하드웨어 설계 철학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그의 정신은 ‘완벽한 이론이 아닌, 작동하는 기술’을 중시하는 수많은 현대 기술자에게 여전히 큰 울림을 준다.
현재 런던 그리니치 천문대에는 해리슨이 만든 시계(H1~H4)가 보존되어 있으며, 그는 영국 대중과 과학계 양쪽에서 가장 존경받는 발명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삶은 배경도, 제도도 갖추지 못한 개인이 순수한 의지와 논리로 인류의 항로를 다시 그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이다.
*참고사항
존 해리슨(John Harrison, 1693~1776) | 최초의 실용적 해상 크로노미터 개발 |
피에르 르 루아(Pierre Le Roy, 1717~1785) | 대량생산이 가능한 쿠로노미터의 핵심 기술을 발전 시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