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은 설계자]29. 인도 무굴제국의 경제 행정 설계자 -토다르 말(Todar Mal)
제국의 땅 위에 구조를 설계한 실무형 설계자의 역사
16세기 인도 아대륙은 무굴 제국(Mughal Empire)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티무르와 칭기즈 칸의 후손이라 주장한 바부르의 후예, 아크바르 대제(재위 1556~1605)는 군사적 정복과 종교 관용 정책을 통해 제국의 기반을 다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영토가 넓어지고 문화가 융성해도,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선 경제와 세금 시스템이라는 실무 기반이 반드시 필요했다.
바로 이 핵심을 설계한 인물이 토다르 말(Todar Mal)이었다. 그는 무굴 제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토지 조사 및 세금 체계 개혁자이며, 전통적인 관료제가 아닌, 측량과 통계, 문서화 기반의 행정 시스템을 설계한 실무형 설계자였다. 왕은 아크바르였지만, 그의 제국이 지속 가능하도록 구조를 만든 손은 토다르 말의 것이었다.
전쟁 속에서 자란 행정 설계자의 성장과 입문
토다르 말은 1500년경 오늘날의 우타르 프라데시 지역 라하르푸르 마을로 추정된다. 그는 힌두교 카야스트(문서 담당 카스트)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산스크리트어, 페르시아어, 회계법과 문서 정리에 능했다. 처음에는 수르 왕조의 셰르 샤 수르 휘하에서 문서 기록관으로 일했으며, 이 시기에 실무 능력을 인정받아 토지 조사와 회계 관리자로 빠르게 성장했다.
무굴 제국이 수르 왕조를 무너뜨리고 다시 북인도를 장악했을 때, 그는 뛰어난 실무 능력 덕분에 아크바르의 궁정에 재무 관리직으로 다시 기용된다. 아크바르는 단순히 출신이 아닌 능력과 성과 중심의 인재 등용을 강조했고, 이는 힌두교도였던 토다르 말이 제국의 최고 재무총관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궁정에서 전통적 세금 제도가 한계에 부딪히는 것을 보며, “제국을 운영하려면 땅을 숫자로 바꿔야 한다”는 철학을 갖게 되었고, 바로 그 철학은 이후 인도 역사상 가장 체계적인 토지세 시스템으로 구체화된다.
전국을 측량하고 수치화한 세금 구조 설계자의 혁신
토다르 말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바로 ‘잔다리(Zabt)’ 제도라 불리는 토지세 체계의 설계였다. 당시 인도는 지역마다 농업 환경이 다르고, 세금 징수 방식도 제각각이었다. 그는 이를 통일하기 위해 전국을 15개 세금 구역으로 나누고, 각 지역의 토지 생산력과 수확량을 조사하는 대규모 측량 사업을 시행한다.
그는 농민들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국고 수입을 안정화하기 위해, 최근 10년간의 평균 수확량과 시장 가격을 기반으로 세율을 계산하는 방식인 '다샬라(Dahsala)'라는 과세 체계를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정확한 단위 체계(비스와, 빅하 등)를 통일하고, 관개 시설 유무, 토양의 질, 작물 종류에 따라 세금 비율을 현금으로 고정하여 징수의 일관성과 효율성을 높혔다. 이는 단순히 '토지에서 얼마를 걷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경제적 예측 가능성’을 설계한 정책이었다.
이 모든 정보를 공식 문서로 정리하여 각 지역 관청에 배포하고, 관리들은 농민과의 분쟁을 줄이기 위해 세금 계약서와 계산서를 보관하도록 제도화했다. 토다르 말의 시스템은 한 세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제국이 존재하는 한 지속 가능한 수입 구조를 만든 체계적 설계였다.
문서, 단위, 언어를 통일한 행정 체계 설계자
토다르 말은 단지 세금만을 설계한 것이 아니라, 문서 행정과 측량 단위, 회계 언어까지 표준화하여 무굴 제국의 행정 체계를 근대화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는 전국의 토지를 조사한 후, 각 지역에서 사용되던 단위(가로, 세로, 면적)를 통일하고, 측량용 금속 줄(‘자’)을 표준화하여 표준 도량형 체계를 구축하였다.
또한 모든 회계 기록은 페르시아어로 작성하되, 지역 방언과 병기하도록 설계하여 중앙과 지방의 소통을 강화했다. 그는 관리들에게 문서 정리법, 서명 절차, 계약서 보존 연한 등을 정리한 ‘회계 관리 지침서’(현대식으로 보면 매뉴얼)를 배포하며, 제국 전역의 행정 질서를 통일해 나갔다.
토다르 말이 만든 이 구조는 단지 숫자와 도장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제국이 백성과 연결되는 방식, 왕이 농민과 계약을 맺는 구조, 지방과 중앙이 상호 보고하는 통로를 설계한 것이었다. 이는 이후 영국령 인도까지 영향을 주는 행정 시스템의 초석이 된다.
문화적으로는 힌두교 경전인 바가바타 푸라나를 페르시아어로 번역하고 1585년에 가시 비슈와나스 사원을 재건한다.
이름은 잊혀졌지만 구조는 남은 설계자의 유산
토다르 말은 1589년경 세상을 떠났다.그가 만들어낸 세금 제도, 문서 체계, 행정 표준화는 무굴 제국이 수십 년간 재정 위기 없이 유지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그가 설계한 제도는 후에 영국 식민 행정에서도 일부 차용되었으며, 오늘날 인도의 일부 지역 행정 단위 및 토지 측량 방식은 토다르 말의 시스템을 계승한 것이다.
토다르 말은 제국이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도록 설계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크바르 황제의 궁정에서 나브라트나(9명의 보석)중 한 명으로 존경받았으며, 무굴 제국의 안정과 확장을 뒷받침한 핵심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왕의 그늘에서, 농민의 삶을 수치로 바꾸고, 국고를 체계로 설계한 실무자. 토다르 말은 숫자로 제국을 움직인 정치 기술자였으며, 경제를 통치의 무기로 만든 조용한 전략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