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은 설계자]23.도쿠가와 통일전쟁의 붉은 사무라이-이이 나오마사(井伊直政)
전국시대의 마지막, 에도 시대의 역사가 시작되다
16세기 후반, 일본은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 이후 다시 격동에 휩싸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평정한 듯했지만, 그의 사후 다시 권력의 공백이 생기면서 일본은 최후의 통일 전쟁으로 향하게 된다. 이 시기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뛰어난 인내와 정치 감각으로 전국을 하나로 묶을 기회를 잡는다. 그러나 이에야스가 단독으로 통일을 완성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곁에는 뛰어난 군사 전략가이자 행정 실무형 설계자, 이이 나오마사(井伊直政, 1561~1602)가 있었다. 나오마사는 단순한 무장이 아니었다. 그는 도쿠가와 세력을 위해 군 조직을 체계화하고, 적과 아군을 명확히 구분한 색채 전술을 도입했으며, 전투 이후에는 지방 통치를 안정시키는 실무 설계까지 맡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역사의 전환점에서 전쟁의 외형뿐 아니라, 통치의 뼈대를 설계한 인물이었다.
역사의 현장에서 성장한 설계자의 출발
이이 나오마사는 1561년 3월 4일, 지금의 시즈오카현 하마마쓰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원래 임무가 분명하지 않은 지방 무가였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가 전사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어려운 삶을 살게 된다. 그런 그를 발견한 사람이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이에야스는 그를 신중히 키우며 측근 중 하나로 삼았고, 이이 나오마사는 점차 정치 감각과 무력, 실무 능력을 함께 갖춘 인물로 성장하게 된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중요한 전투에 참여했는데 다케다 가문의 붉은 갑옷 부대를 계승해 도쿠가와 최강의 정예부대를 조직하여 이이 아카조나(井伊赤備)에를 창설한다. 1575년 나가시노 전투, 1584년 고마키·나가쿠테 전투, 그리고 1590년 오다와라 정벌에서 활약하며 도쿠가와의 핵심 군사 지휘관으로 떠오른다. 특히 그는 항상 전선에서 질서를 잡고, 전투 후 적의 잔당 처리나 포로 처리, 지휘 체계 정비 등 ‘전후 처리’ 업무를 정확히 수행해 높은 신뢰를 받았다.
그는 단지 전쟁에서 싸우는 사무라이가 아닌, 전쟁을 ‘조직적으로 처리’할 줄 아는 설계자로 전국 통일 이후 지방 통치를 설계하는 기반이 된다.
붉은 갑옷과 조직력, 전투 설계자로서의 역할
이이 나오마사의 별명은 ‘붉은 악마(赤鬼)’였다. 그 이유는 그가 이끈 군단이 모두 선명한 붉은 갑옷을 착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색의 상징성과 시각적 질서감을 활용해 전장에서의 조직력을 강화했다. 이는 단지 멋이나 겁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대 간 통신, 위치 구분, 사기 진작 등 실용적인 전략 설계였다.
특히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그는 도쿠가와 측 좌익 부대를 지휘하며 결정적인 활약을 했다. 당시 그는 중상을 입고도 병력을 유지하며 후방까지 명령 체계를 유지시켰고, 부대별 통신 체계를 사전에 설계하여 혼란 없는 전투 수행을 가능하게 했다.
그가 이끈 ‘붉은 군단’은 단순한 병력이 아니라, 질서, 시각적 통제, 상징의 효과를 이용한 현대적 부대 설계 모델이었다. 도쿠가와 세력은 그를 통해 군사 조직을 눈에 보이게 구성하는 방식을 배웠고, 이는 에도 막부의 사무라이 계급 질서 및 병역 체계의 모델로 이어진다.
전후 통치와 인사 시스템을 설계하다
전쟁은 끝났지만, 새로운 막부를 유지하기 위해선 지방 통치, 가신단 정비, 인재 등용이 중요했다. 이이 나오마사는 1600년 이후, 히코네 번을 받으며 봉건적 지방 통치의 설계자 역할을 본격적으로 수행한다. 그는 전투 후 파괴된 지역에 행정관과 세무관을 파견, 지방 호족을 회유 또는 교체, 농지 세율을 조정하는 등 통합 정책을 실무에서 설계했다.
또한 그는 무력 중심의 사무라이 사회에서, 실무능력과 충성도를 기준으로 인재를 등용하는 인사 설계를 실행했다. 이를 통해 도쿠가와 내 ‘정치 사무 조직’을 최초로 정비했고, 이후 이에야스는 이런 구조를 참고하여 에도 막부 내 신분 질서, 번 구조, 관료 체계를 완성하게 된다.
이이 나오마사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전쟁이 남긴 흔적을 정리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평화의 설계자’로서 활동했다. 이런 실무형 인재의 존재는 에도 막부가 260년을 유지한 이유 중 하나였다.
짧지만 강력했던 설계자의 유산
이이 나오마사는 세키가하라 전투(1600년) 후 중상이 악화되어 1602년, 불과 4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그의 유산은 길게 남았다. 그가 설계한 붉은 군단의 전투 방식, 지방 통치 행정 체계, 인사와 병력 관리 시스템은 이후에도 히코네 번의 기본 모델이 되었고, 에도 막부의 전체적인 행정 구조 속에 녹아들었다.
그의 후계자들은 히코네 번에서 중용되었고, 에도 시대를 통틀어 이이 가문은 도쿠가와 정권의 실무와 정보 담당 역할을 맡으며 오랫동안 정치의 한 중심축이 되었다. 나오마사의 충성과 군사력은 도쿠가와 정권의 안정에 큰 기여를 했고, 후다이 다이묘 중에서도 최고봉으로 막부 정치의 기반을 구축했다고 평가된다. 전쟁의 질서를 만들고, 평화의 행정 구조를 설계한 인물이었던 나오마사의 ‘붉은 갑옷’은 그의 전투 정신을 상징했지만, 진짜 그의 무기는 조직, 절제, 실무, 그리고 구조 설계 능력이었다. 이이 나오마사는 역사의 무대 뒤에서 막부를 가능하게 한, 진정한 실무형 설계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