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은 설계자]21. 수니 알리(Sonni Ali)의 행정을 설계한 익명의 설계자들
사하라 너머의 제국, 새로운 역사 질서를 설계한 땅
15세기 서아프리카, 유럽은 르네상스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사하라 사막 남쪽에는 이미 고도로 조직된 거대한 황금 제국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제국이 바로 말리 제국(Mali Empire)이다. 이 제국은 서아프리카에 있었고, 오늘날 말리 공화국을 중심으로 세네갈, 기니, 모리타니,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일부 지역까지 포함된다. 당시 티브크투(Timbuktu), 가오(Gao), 제네(Jenne) 같은 도시를 중심으로 사하라 무역, 이슬람 율법, 농업과 광업이 융합된 고유한 문명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말리 제국의 부와 질서, 학문적 수준은 14세기 이븐 바투타(Ibn Battuta)에 의해 상세히 기록되었고, 이후 15세기에는 수니 알리(Sonni Ali)라는 강력한 군주가 등장하며 송가이 제국(Songhai Empire)으로의 전환이 시작된다. 수니 알리는 군사적 정복자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의 치세 동안 도시를 유지하고 통치 구조를 조직한 실무 행정가들, 특히 이슬람 율법과 아프리카 전통을 동시에 이해한 숨겨진 설계자들이 실제 제국의 틀을 만들어나갔다.
이븐 바투타는 “말리에는 질서가 있고, 공정한 재판이 있으며, 학자와 상인이 섞여 살며, 아침이면 고요하게 이슬람 법에 따라 분쟁을 해결한다”고 기록했다. 이것은 단순한 왕의 힘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실무형 행정 설계자의 손길이 작용한 결과였다.
이름 없는 설계자의 존재
이븐 바투타가 말리 제국을 방문한 것은 1352~1353년경이지만, 그가 묘사한 제도와 법, 재판 구조, 행정의 틀은 수니 알리 치세를 준비하고 구축한 기반이 되었다. 그는 ‘법을 다루는 이들’, ‘황금 무역을 계산하는 자’, ‘왕이 직접 만나지 않고도 명령을 시행하는 자’들에 대해 언급했지만, 이들의 이름은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기록에서 중요한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이들이 문자와 계산에 능하고, 종교 율법과 세속 행정을 조율할 수 있는 이중 지식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쿠라니(이슬람 율법)와 송가이 전통 정치 체계를 동시에 이해했고, 도시마다 시장, 이맘, 법률관, 행정 실무자가 함께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이 행정관계자들은 왕이 군사 원정을 나간 동안에도 세금 징수, 분쟁 중재, 시장 감시, 금 무역의 단속을 실행했으며, 심지어는 이슬람 율법 재판과 전통법 재판을 병행 적용하는 시스템을 운영했다. 그들은 제국을 ‘다스리는 방법’을 설계한 사람들이었으며, 무력보다는 문서와 신뢰로 시스템을 움직인 숨겨진 설계자였다.
수니 알리의 정복을 뒷받침한 행정 설계자
수니 알리(재위 1464~1492)는 말리 제국의 쇠퇴를 틈타 등장한 송가이 제국의 초대 통치자이다. 그는 군사적 능력으로 제국의 영토를 확대했지만, 정복한 땅을 유지하려면 단순한 힘만으로는 부족했다. 이때 제국을 실제로 운영한 것은 티브크투, 제네, 가오에 배치된 실무형 행정가 그룹이었다.
이 그룹은 금과 소금의 거래량을 감시하고, 도시의 인구와 농업 수확량을 기록하며, 세금과 무역 관세를 균형 있게 부과하는 시스템을 설계했다. 특히 그들은 사하라 횡단 무역(카라반 무역)을 연결하는 세금 중개자 역할을 하며, 북아프리카 상인들과의 접촉 지점을 통제하는 경제 설계자였다.
수니 알리는 때때로 이슬람 율법에 반하는 정책을 펴기도 했지만, 그를 보좌한 설계자들은 종교적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도시별 율법학교(Madrasa)를 유지하고, 이맘들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행정과 종교의 분리된 조율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들은 통합된 정책보다는 지방 맞춤형 제도를 통해 실제 통치력을 설계한, 분권형 실무 행정 설계자였던 셈이다.
이슬람과 아프리카 전통의 균형을 설계한 문화 관리자
말리와 송가이 제국의 행정은 단순한 세금과 법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슬람 율법과 토착 신앙, 언어, 농업 관습을 병행하는 문화 융합적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이름은 전해지지 않지만, 이 구조를 만든 설계자들은 전통 부족장과 무슬림 지도자 사이에서 협상하고 조율하는 문화 관리자였다.
예를 들어, 일부 지역에서는 이슬람력이 아닌 전통력(음력)에 따라 축제가 운영되었고, 세금도 곡물 또는 노동력으로 납부할 수 있도록 융통성을 두었다. 이는 단지 유화 정책이 아니라, 다양한 공동체가 안정적으로 통치 구조 안에 편입될 수 있도록 설계된 전략이었다.
이 설계자들은 다양한 언어(풀라니어, 밤바라어, 아랍어 등)를 이해하고 통역할 수 있었으며, 지역별 시장 구조와 혼인 관습도 존중하면서 통치 명령을 전달하는 지방 분권형 소통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들은 이름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제국이 무너지지 않도록 기초를 다진 구조 설계자였다.
기록되지 않아도 존재했던 설계의 유산
오늘날 우리는 수니 알리의 이름은 알지만, 그를 뒷받침한 행정 시스템을 만든 사람들의 이름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이븐 바투타와 16세기 아랍 역사서, 그리고 티브크투의 마드라사 문헌에서 일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제국은 단지 왕이 만든 것이 아니라, 왕의 정책을 현실로 만든 설계자의 구조에 의해 유지된다.
말리 제국과 송가이 제국은 모두, 군사력만이 아닌 행정과 문화 설계로 장기간 존속한 대표적인 아프리카 국가들이다. 이 안에서 활동한 설계자들, 특히 이름 없는 문서 기록자, 지방 세금 관리자, 문화 조율자들은 진정한 ‘보이지 않는 설계자였다.
이제는 그들의 이름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만든 행정 시스템과 제도는 오랫동안 서아프리카 지역의 사회 구조와 문화 관행 속에 녹아 있었다. 기록되지 않아도 존재했던 손, 그것이 바로 아프리카 제국을 운영한 숨겨진 설계자의 유산이다.